조성호 칼럼

선비정신과 경제
기사입력 2018.09.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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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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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 전 부산광역시청(행정자치국 국장)

최근 우리나라 경제난이 심상치 않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요즘 국가경제는 옛날 소먹이고 농사짓던 시절과는 규모나 복잡함, 확연히 다르다.정부의 정책에 일반 국민은 전재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달려있는 심각한 사안이 될수도 있다. 명분이냐 실리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문득 조선시대 선비정신이 떠오른다.

 

선비 정신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한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인 의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지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인간이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짐승의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인성론(人性論)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인간의 본능과 물질을 최고 가치로 인정하는 현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인데, 2차 세계 대전후 전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주도국으로 하는 공산주의 체제로 양분되었고 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고 그에 따른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성장해 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체제의 유지 논리인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에서 도출한 실리주의(實利主義)가 현대인의 삶의 기준이라면 조선 후기 사회는 명분을 최우선으로 하는 명분주의(名分主義) 사회였다.

 

그러나 현대의 실리주의적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평가 절하한다. 명분은 핑계로, 의리는 깡패용어로,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사기(士氣)는 군대용어로 전락해 버렸다. 소비가 미덕이 되고 청빈(淸貧)은 낡아빠진 구시대의 덕목으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요시하는 결과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선비 정신은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 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또한 선비 정신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 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정신이다. 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 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 그들은 ()’ 자를 선호하여 청의(淸議), 청백리(淸白吏), 청요직(淸要職), 청명(淸名), 청류(淸流) 등의 용어를 즐겨 썼다. 이러한 가치관은 지식인 사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고 사회 저변에 확산되어 일반 백성도 염치 없는 놈이란 말을 최악의 욕으로 인식했고, 예의와 염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되었던 것이다.

 

선비정신의 근저는 입지에 있다. 대의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뜻을 세워,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했다. 퇴계이황은 '선비가 병폐를 일으키는 것은 입지 즉 뜻을 세우지 못한 때문'이라고 하였다. 선비가 세운 뜻이 확고하면 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론을 그르칠 염려가 없다.

 

선비는 국난을 당하면 목숨도 바치며, 득을 보면 취하기 전에 먼저 그 의를 생각한다. 자기를 알아주면 자기 몸을 버릴 수 있는 정신,정의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을을 당할지언정 구차하게 살기 위해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비록, 빈궁한 생활을 하더라도 도덕을 숭상하고 실천했으며 반드시 예의와 염치를 지켜 자신의 책무를 다 하였다.이와 같이 선비정신은 뜻을 세워, 경건한 마음으로, 학문과 덕을 쌓아, 올바른 길로 지조를 지켜 살아가려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심오한 철학도 권력과 만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당대에도 위험성을 간파한 지식인이 있었다. 퇴계와 동갑내기 유학자 남명(조식·1501~1572)"요즘 학자라는 이들이 손으로는 물 뿌리고 비질하는 법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말하며 이름을 도둑질하고 남을 속인다"고 했다. 아래에서 배워야[下學] 높은 이념도 실현할 수 있다[上達]'하학이상달'('논어' 헌문 편)은 유학의 원조인 공자의 가르침이었다.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듣지도 보지도 않고, 자기만의 소신과이념을 관철하려 할 때 비극이 싹튼다. 현실을 외면한 이념의 후예들이 권력을 쥐고 흔들다 맞이한 나라의 최후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정자들은 부디 귀담아듣고 바로 보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귀 밝은 걸 '()'이라 하고 눈 밝은 걸 '()'이라 한다. 귀 닫고 눈 감고서 총명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이념이나 소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삶이다. 나라는 이념 실험하는 연구실이 아니다. 숱한 목숨이 정책 하나에 울고 웃는다. 삶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올바른 정책을 펴주길 기대한다.

 

[부산뉴스 기자 bs@bus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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