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인터뷰] (사)한국휘트니스협회 최명희 이사장

기사입력 2019.06.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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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휘트니스협회  최명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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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0년대만해도 생소했던 에어로빅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 전국민의 운동으로 만들기까지 큰 족적을 남긴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도입초기 당시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초기 에어로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생소한 동작들이다보니  운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컸던것 같다  춤과 운동사이의 혼란^^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런 에어로빅 인식을 바꾸기 위해 유행가가사처럼 (어디든지 달려갈거야~^^ )
어디든지 뛰어다녔다.

 

Q.학창시절에는 한국무용을 전공했던데 전향의 계기가  있는가

 ▶한국무용으로 실력을 쌓아가고 있을 무렵 나를 지지해주던  스승이 돌아가시게 되었다  버팀목과 같은 스승의 부재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에어로빅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된것이다. 지나고 보니 신의한수 였다.  그러나 육성한 제자가 2천명에 달하지만 정작 나에겐 스승이 없다  새로운 길에 대한 고독하고 혹독한 댓가를 치른셈이다.


Q.일본정통 에어로빅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 협회를 설립   부산 광복동번화가에 자리잡은 이유가 있는가

▶그렇다 그 당시 부산하면 보통 해운대였지만 관광지 이미지가 강해서 난 과감히 광복동을 선택했다 패션과 젊음이있고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으니까   에어로빅 본부가 부산 광복동이라는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판단 여기서 시작 전국적으로 확산을 시키게 되었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KAFA를 브랜드화해서  전국으로 보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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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예술적 끼와 재능뿐만 아니라 사업적 마인드가 엿보이는데 부모님과 자라온  배경이 궁금하다

▶그렇다 나는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젠틀하시고 스마트하신 팔방미인이셨다  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은걸까? 사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다가 경영학으로 전과를 했다  KAFA를 운영하면서 전문적 경영공부의 필요성을 절감 학문적 이론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2007년 동아대에서 박사졸업했는데 학위논문이 고객전환장벽을 위한 연구다.
 
Q. 이력서 두 장 이 빽빽하다  몇가지만 소개 해달라
2002년  아시안게임추진위원회
제 12회 부산 동아시아 경기대회 및 제 4회 아시아경기조직위원회 전문위원 문화식전안무가
제 14회 부산아시아 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개폐막식안무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회식전 및 폐막 안무 제작 및 지도등
에어로빅을 세계무대에  알린 계기들이다
이런 국제대회에서 한국과 한국의 에어로빅을 알릴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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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예술적 감각 그리고 경영마인드를 겸비 과감한 돌파력으로 한국휘트니스협회를 오늘에 이르게 한것 같다 이제 인생2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단체협의회  얘기를 듣고 싶다

 ▶34세에 입문 24년만에 제 26대 회장에 오르게 되었다
10만 회원 아우르기,  여권신장에 주력했고 임기시작 8개월만에 협회사무실을 이전 오랜 숙원을 해결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것은 체육단체회장이 나왔다는거다. 여권신장뿐만 아니라 에어로빅을 정식종목단체 만드는 과정에서도  많은 눈물을 쏟았는데.. 누구보다 나는 여성체육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처음에는  에어로빅 인식전환과 입지를 확보하기위한 짧은 생각으로 여협에 들어갔고 에어로빅 지키기에 급급했는데 가서 여러 여성단체를 접하고 회장을 지내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체육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단체가 전문화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여성건강, 여성체육,  인권으로 까지 관심이 커진것이다.

 

Q.여성체육인으로 시체육회부회장 일을 했는데

 ▶체육회이사,  2002 아시안게임, 체조협회, 생활체육회 활동을 했고 여성단체활동 24년 마치고, 여성체육인으로 당당히 부회장이 되었고, 여성체육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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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끝은 어디인가

 Q.백세시대를 위한 남 다른 준비를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초고령사회로 곧 접어드는데, 시니어 실버대상 건강을 전파하는 일을 하고싶다. 그래서 유투브를 준비중이다 이제 인생마지막 꿈은 대한민국 국민 건강지킴이가되어 건강을 선물하고 싶다
가칭 “최명희의 건강운동 건강을 전파하는 건전지“


내 인생 3막의 키워드는 단연코  봉사


Q.파란만장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도전과 성공에 박수를 보낸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돌아보면  20~40대는 도전의 기쁨이  50대는 아픔과 좌절의 시간이 많았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안목' 이 힘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여성 체육인으로서  건강운동을 통해 여성건강과 사회적약자 소외계층을 위한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백귀란 기자 bs@bus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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