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동양철학 풍경(9): 다시 ‘전통’의 어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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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모를 찾고, 스승을 찾고, 내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올라가는 계절이 다가온다. 그동안 배우고 익혀 온 것들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내 어깨에 올라서 있다. 그런데 ‘전통’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있는가? 사물의 역사적 시원(origin)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정작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것들의 시원이 가지는 신성불가침한 자기동일성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차이’, 다시 말해서 ‘불일치’일 뿐이다.
전통은 객관적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 작동할 뿐이다. 이제, 전통을 해체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전통을 해체한다함은, 아름다운 민족문화를 갈아엎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전통이 ‘일방적 권위’나 ‘절대’로 읽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권위가 절대(absolute)로 읽힐 때, 그것은 일체의 접근과 어김을 거부하는 터부가 될 뿐이다. 터부가 밑천이 된 권위, 그리고 그 권위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은 폭력에 불과하다. 터부는 배제를 낳고 배제는 고립을 낳고 고립은 또 다른 터부를 낳는다. 왜냐하면 고립된 것은 늘 스스로 고립됨을 정당화할 필요를 느끼는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극히 선택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적인 것만큼이나 신화적이기도 하다. 무엇을 기억하는가는 내가 지금 마주치고 있는 상황과 내가 지니고 있는 소망이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은 지금 나의 반영인 것이다.
부모를 찾고 스승을 떠올리는 계절에 다시 전통을 생각한다. 해야 될 것 같아서 하거나 해왔기 때문에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형식이나 절차를 바꾸어도 상관없고 남들과 다르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정신없이 걸어왔던 길에서 잠시 멈추어 함께 걷고 있는 사람과 씩 웃으며 서로 토닥거려주는 봄날이 되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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