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동양철학 풍경(6)
어디에 점을 찍을꼬?
기사입력 2018.11.2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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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선학원 이사장이었던 남산당 정일선사가 입적한 해는 2004년이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속리산 법주사 산문 안쪽에, 늙고 굽은 노송 사이로 사람들이 오갔다. 나는 절 마당 한편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등짝의 땀을 말렸다. 더위 먹은 바람이 내처 달리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겨우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정일스님이 젊은 날 한창 수행하던 시절에 도봉산 망월사 춘성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춘성스님은 한자로 ‘春城’이라고 쓴다.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13살에 백담사의 만해스님 문하로 출가했으니 만해가 작명자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결국 이름처럼 살다 간다고들 하는데 그도 딱 이름처럼 살다갔다. 그의 법명을 지어준 이는 “봄날 성터 어디에 꽃피지 않는 곳이 있으랴(春城無處不開花)” 하는 기막힌 싯구절을 떠올리고 지었는지도 모른다.정일을 앞에 앉혀 놓고 춘성은 방바닥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물끄러미 보고 있던 정일을 향해 춘성이 입을 열었다. “이 동그라미 안에 점을 찍어도 30방이요, 동그라미 밖에 점을 찍어도 30방일세. 자네는 어디에 점을 찍으시겠는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촛불을 흔들었다. 거무스레한 그을음이 낯선 짐승의 꼬리처럼 공중에 뜨겁고 검은 흔적을 남겼다. 정일을 바라보는 춘성의 눈빛은 못으로 박은 듯 흔들리지 않았다.30방이라는 말은 30방을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틀렸으니 그 벌로 두들겨 맞는 것이다. 사방이 막힌 동그라미는 위태롭다. 동그라미가 그려지는 순간 안팎이 나눠진다. 안이 아니거나 밖이 아닌 곳은 없다. 그래서 위태로운 것이다. 어디에 점을 찍고, 어떻게 동그라미를 지우겠는가. 애당초 원도 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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