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동양철학 풍경(5)

땀 흘리는 돌
기사입력 2018.10.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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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돌이 있다. 밀양 표충사의 사명대사비가 대표적이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3말 1되의 땀을 흘렸고, 6‧25 전쟁 이틀 전에는 3말 8되를 흘렸다고 한다. 그렇게 국가적 위난 사태가 있을 때마다 돌은 사람들과 더불어 힘겨워했다. 간혹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람 중에는 비석의 물기를 손가락으로 찍어 맛본 사람도 있었던 모양인데, 진짜 짠맛이 낫다고 한다. 전북 익산의 어느 절에 있는 석불은 나라에 흉한 일이 있을 즈음에 땀을 흘린다고 한다. 경주 최부자집 종갓집에 조상의 신도비가 있는데, 그 비석도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 집안 종손의 얘기다.
 
하얀 가운을 입은 많이 배운 사람들은, 땀은 사람의 피부나 동물의 살가죽에서 나오는 것인데 돌은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니 땀을 흘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돌의 물기는 결로(結露) 현상이라고 했다. 여름철에 차가운 맥주병 주위에 물기가 잡히거나, 겨울철 집안의 구석진 곳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그들은 자상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결로’와 ‘현상’이라는 표현은 무척 과학적인 설명처럼 보였지만, 그냥 이슬이 맺혀서 그렇다는 말에 불과했다. 이슬이면 이 돌 저 돌 할 것 없이 근처에 있는 돌에 죄다 맺혀야지, 어째서 특정 비석이나 석불만 유독 흥건해지느냐고 평생 이슬을 밟으며 살아온 촌로들은 구시렁거렸다. 또 무슨 이슬이 짠맛 나는 이슬도 있느냐고, 비석의 물기를 맛본 사람은 생각했을 테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슬은 땀만큼이나 먼 얘기였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도 있고 카오스(chaos) 이론이라는 것도 있다. 카오스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말인데 원래는 ‘크게 벌린 입’이라는 뜻이다. 마치 무엇이나 삼켜 버릴 듯한 거대한 블랙홀 같은 이미지로 무질서, 혼돈, 무한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 무(無)가 있어야 비로소 유(有)가 나온다고 동양에서는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은 땀흘리는 돌이 품고 있을 그 아득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자연의 질서를 경배했다.

[부산뉴스 기자 bs@bus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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